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과거에 인플레이션을 해결한 사례들?

주식, 경제

by Yul's space 2023. 9. 1. 15:12

본문

반응형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고금리로 고통받는 지금 시기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플레이션과 그걸 해결했던 사례들 몇가지를 찾아보았다

렌텐마르크의 기적

가장 먼저 소개할 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독일 역시 금과 화폐의 가치가 연결된 금본위제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화폐와 금의 고리가 깨진 상황에서

독일의 중앙은행은 파피어마르크(Papiermark)라는 금태환 불가능한 지폐를 찍어내게 된다

또한 금속을 전쟁 물자로 쓰기 위해서 동전을 마구 수거한 탓에 동전이 부족해지자,

노트겔트(Notgeld)라는 임시 지폐를 찍어냈다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해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독일 은행은 전쟁배상금 상환을 위해 계속 돈을 찍어냈고, 노트겔트도 각지에서 발행되었다.

 

동전은 녹여서 무기 만드는데 써버리고 금이랑 교환도 안되는 지폐는 무한으로 발행했으니

돈의 가치는 휴지조각 이하로 떨어지며 어마어마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오죽하면 벽지보다 지폐가 더 싸니, 지폐로 벽을 바르고

아이들은 장난감 살 돈으로 탑을 쌓으며 노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독일 렌텐 은행(Deutsche Rentenbank)

렌텐 은행은 얄마르 샤흐트의 계획에 따라

농장과 공장을 담보로 하여 렌텐마르크를 발행했다.

당연히 농장과 토지는 유한하기에 화폐 발권량은 32억 렌텐마르크로 제한되었다

이는 화폐의 가치가 더 이상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소성을 불어넣었고

독일 정부가 '렌텐마르크 발행 선언'을 한 순간부터 초인플레이션은 완전히 정지했다

렌텐마르크의 기적(Wunder der Rentenmark)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화폐에서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사례가 되었다

경제 대통령 김재익

"저의 경제 정책은 인기가 없습니다.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도 결코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텐데, 각하께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 김재익 -

"여러 말 필요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 전두환 -

김재익은 1980년대 경제개혁을 이끈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1980년에 소비자 물가 상승율이 28%였던 것을 1982년에 7%로 줄여버리고

1983년부터는 아예 3.5%를 넘기지 않고 유지하는데 성공하며

8.15 해방 이래 40여년간 지속된 高 인플레이션 시대를 마감한 인물이다

김재익 덕분에 한국의 경제성장률 역시 80년에 -1.6% 였던 것을

1981년에 7.2%, 1983년에 13.4%로 올린 것을 기점으로, 이후 평균 10%대의 성장율을 기록한다.

김재익이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시장 경제 원리를 믿었고, 모든 것을 시장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가는 안정되어야하고 수입은 자유화되어야한다"

"임금상승은 생산성 증가와 범위 내로 억제해야한다"

"환율과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한다"

"개방과 경쟁은 필수적이며 정부의 간섭이 최소화되어야한다"

"경제화, 개방화, 국제화는 결국 독재 체제를 어렵게 한다"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적 소득이 분배되지 않아 서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국민의 삶이 개선되고 정부 신뢰를 커지게 하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록 김재익은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김재익이 죽지 않고 경제 관료를 계속했다면

IMF 외환위기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1970년 당시 미국은 전쟁 비용을 조달하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찍어내었고

그로인해 인플레이션은 굉장히 만성적인 현상이었다

1971년 8월 닉슨 쇼크로 금 태환이 불가능해지며 달러의 가치는 1/30토막이 났다

1973년부터는 오일쇼크까지 발생하며 유가는 3달러에서 40달러까지 10배 넘게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닉슨 대통령은 재선을 원했고

연준을 압박하여 경기부양책인 통화팽창을 시도했다

거기에 인플레이션 수치를 가능한 낮게 보이기 위해

변동성이 높은 품목을 지수에서 빼버리는 근원인플레이션지수까지 만들었다

이는 전부 국민의 지지율을 얻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닉슨이 시행한 정책들은 인플레이션을 더 심화시켰고

물가 통제는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며 실업자만 폭등시켰다

그 결과 미국은 세 차례나 경기 침체에 빠지는 트리플 딥을 겪는 와중에

물가까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나타난 구원자가 바로 폴 볼커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

한마리 토끼만 잡기로 결정한 볼커는 인플레이션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볼커는 경기침체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21.5%까지 올렸다

"...네?"

살면서 듣도보도 못한 사상 최고치를 갱신한 금리

(지금은 아르헨티나가 118%로 갱신했다...)

높은 부채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 회사들의 40%가 무더기로 파산했고

기업이 망하니 실업률은 5%에서 10%로 늘며 미국인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소비는 급락했고 주식시장은 폭락하며 미국 경제는 더욱 깊은 불황에 빠져들었고

볼커는 권총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정도로 온갖 시위와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1981년 중반에 접어들자 고금리 정책의 효과가 나타났다

은행 예금이자가 높으니 돈들이 은행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시장 유동성이 줄어들자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시작했다

한때 14.6%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 수치는 1983년에 2.36%까지 떨어졌다.

폴 볼커가 경제가 충분히 고통받았다는 판단 아래 긴축을 풀자 경제는 힘차게 되살아났다.

이때부터 미국 경제는 200년 역사상 최고라 할 정도의 강세장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그가 인플레이션을 잡아 미국 경제를 지금의 위치까지 만들었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는 암울했던 미국 경제를 살려내고 추락한 달러의 위상을 회복시켰으며

14.6%까지 치솟은 高 인플레이션을 해결했다

미국 연준 의장 중 가장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한 사람 폴 볼커

제롬 파월이 볼커를 존경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